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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옛 지명 하슬라, 미추홀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by hangulove 2023.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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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11월 둘째 주의 화요일,

저는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고, 길모퉁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습니다.

한여름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기는 걸 보고 누가 저기까지 가나 생각했는데 제가 제일 자주 다닙니다. 갈 곳이 하나 더 늘고, 생각할 것이 하나 더 늘고 그러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삶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나봅니다.

 

,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공부 말고 편안하게 읽을거리 몇 개를 가져왔습니다.

 

하슬라

 

얼마 전 강릉에 갔다가 하슬라 아트월드에 다녀왔습니다.

하슬라 아트월드는 너무 넓은 곳이라 한 번에 다 둘러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쉽지만 바다와 면한 전시장만 둘러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하슬라 중학교라는 이정표를 발견했습니다. 그때야 하슬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더군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폭풍 검색을 통해 하슬라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슬라(何瑟羅)는 강릉의 옛 이름이었습니다.

아슬라(阿瑟羅), 하서량(河西良), 하서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는데요.

강릉, 그러니까 하슬라는 원래는 고구려 땅이었다가 4세기 말 신라로 편입이 되었고, 신라는 505년 지증왕 6년 주 현을 설치하면서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 군주를 배치했다고 합니다. 경덕왕 16년인 757년에는 다시 이를 폐지하고 이름을 명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하슬라는 신라가 이곳을 통치하는 기간 내내 군사와 정치, 문화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슬라의 다른 이름인 아슬라에는 큰 바다, 아름다운 자연의 기운(氣運)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푸른 바다를 눈앞에 두었고, 뒤로는 유려한 산세를 가진 관동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유래했을 것 같습니다.

 

하슬라, 아슬라, 하서량, 하서 전부 강릉의 옛 지명입니다.

 

미추홀

 

인천에는 아직도 미추홀이라는 지명을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서는 주몽(朱蒙)의 두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온조는 하남(河南)의 위례를 택했고, 비류는 미추홀에 가서 살았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지리지에는 매소홀현(買召忽縣)을 미추홀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백제 때에는 미추홀이라고 불렀고, 고구려 때는 매소홀(買召忽)이라고 불렀다는데요. 이 둘의 의미는 같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의견은 약간씩 나뉘지만, 미추홀도 매소홀도 거친 들의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천은 바닷물 때문에 땅이 짜기 때문에 살기 힘든 곳이었을 테니까요.

 

동명성왕 (주몽)은 과거 북부여에서 결혼해서 아들을 가졌는데 그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북부여에서 도망쳐야 했다고 합니다. 동명성왕은 말갈과 북옥저를 치고 고구려를 세웠는데요. 이곳에서 재혼해 온조와 비류를 낳았습니다. 동명성왕의 첫째 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북부여에서 도망쳐 고구려로 왔고, 동명성왕은 자신의 장자인 유리를 태자로 세웠습니다.

 

유리가 고구려의 태자가 되자 갈 곳이 없어진 온조와 비류는 남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온조와 비류 함께 하남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류는 하남을 떠나 미추홀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미추홀이 살기에는 척박한 땅임을 깨닫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하남으로 돌아갔다는 설, 척박한 땅으로 내려가겠다고 고집해서 백성과 신하를 잃은 것이 동생 온조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미추홀이라는 이름은 비류가 동생인 온조와 함께 하남에 자리잡았다가 하남을 동생 온조에게 맡기고 스스로 미추홀로 떠났을 때 생겼고, 지금의 인천 바로 그 자리입니다.


 

오늘은 편하게 쉬어가는 시간으로 강릉의 옛이름 하슬라와, 인천에 있는 미추홀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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