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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리말

추수와 관련된 우리말 '풋바심'

by hangulove 2023.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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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여주어서 오후에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우리 동네는 큰길을 건너면 넓은 들판이 나옵니다.

도심과는 10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 이곳은 고요한 시골 마을 느낌이라서 저는 자주 이 들녘의 논틀밭틀 산책을 즐깁니다.

 

농부들이 봄에 심은 모는 이제는 노랗게 익어서 황금벌판으로 변했어요. 허수아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요. 아직 낟알이 덜 익어서 새들이 탐낼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벼도 완전히 고개 숙인 건 아니었고요.

 

이제 가을 추수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해서, 오늘은 우리 말 추수를 가져와 봤습니다.

 

풋바심

 

풋바심은 풋과 바심이 합해진 단어입니다.

 

'풋'은 접두사로 덜 익은 것, 새로운 것을 뜻합니다.

풋콩, 풋감, 풋곡식, 풋과일 등, 덜 익은 것을 나타낼 때 풋을 붙여 사용하죠.

풋내기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바심'은 명사로 곡식의 이삭을 털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추수(秋收)의 우리말이죠.

 

'바심'''이 붙는다면 아직 추수할 때가 아니지만 추수한다. 일찍 낟알을 턴다는 뜻입니다. 곡식이 다 익지도 않았는데 미리 베어서 떨거나 훑었다는 뜻이죠.

 

덜 익은 곡식 낟알은 여물지도 않았을 테고 맛도 덜했을 테고, 무엇보다도 다 익은 곡식 낟알보다는 양도 적었을 텐데 왜 일찍 베어서 낟알을 털어낸 것일까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시죠?

보릿고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보릿고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입니다. 1950년이 지나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먹을 것이 넉넉지는 않았으니까요.

보릿고개(麥嶺) 시기에는 덜 익은 풋보리, 풋밀이라도 있다면 그거라도 먹고 연명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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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을 보시고 그 의미를 한 번 더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앞당겨 풋바심으로 추수를 끝내 버린 농부들은 모라도 빨리 내려고 서둘러 보리논을 갈아엎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문순태, 타오르는 강>

 

*양식거리가 떨어져 풋바심을 하기 위해 이제 갓 알이 여물어 노르스름한 빛을 띠기 시작하는 보리를 베어 눕히는 농부도 더러 있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김원일, 불의 제전>

 

*아버지는 초가을에 풋바심을 하기 전까지 쌀밥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출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신곡머리 풋바심이란 것이 오죽이나 헤퍼야 말이지요.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한무숙, >

 

*사람들은 보리 이삭이 여물기도 전에 모가지를 싹둑싹둑 베어다가 풋바심을 해 먹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문순태, 타오르는 강>

 

*양식거리가 떨어져 풋바심을 하기 위해 이제 갓 알이 여물어 노르스름한 빛을 띠기 시작하는 보리를 베어 눕히는 농부도 더러 있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김원일, 불의 제전>

 

*희멀건 죽사발은 비워도 비워도 허기지는데 보리 풋바심이라도 할 초여름까지는 경칩부터 입하까지 보름간씩 네 절기나 남아 있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김원일, 불의 제전>

 

*풋바심이라도 하려면 보리가 익는 초여름은 되어야 할 텐데, 며칠 전 아기를 낳고 누워 있는 영희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풋바심은 보릿고개를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자주 사용하던 단어였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사용할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책 속에서 풋바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그 의미는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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