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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리말

호졸근하다 / 후줄근하다, 단근질 / 담금질,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

by hangulove 202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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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졸근하다? 후줄근하다?

두 개의 표현 중 하나는 틀린 표현 같지 않으신가요?

그러나 둘 다 맞는 단어입니다.

저는 호졸근하다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고, 보통은 후줄근하다를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호졸근하다나, 후줄근하다고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해요. 이런 말을 타인에게 한다는 것은 조금 실례되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쨌든 호졸근하다, 후줄근하다 두 단어의 의미가 정확히 같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표준 대국어 사전에 후줄근하다, 호졸근하다를 넣으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후줄근-하다

 

형용사」 「1옷이나 종이 따위가 약간 젖거나 풀기가 빠져 아주 보기 흉하게 축 늘어져 있다.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 사전

 

호졸근-하다

 

형용사」 「1옷이나 종이 따위가 약간 젖거나 풀기가 빠져 보기 흉하게 축 늘어져 있다.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 사전

 


 

단근질? 담금질?

 

두 개의 단어 중 어느 쪽은 맞고 어느 쪽은 틀린 말일까요?

아닙니다. 두 개 다 맞는 단어이고 그 의미가 다르답니다.

 

담금-질 (명사)

 

1」 『공업고온으로 열처리한 금속 재료를 물이나 기름 속에 담가 식히는 일.

 

2부단하게 훈련을 시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낚시를 물에 담갔다가 건졌다가 하는 일.

 

'담금질'은 높은 온도에서 달군 금속 재료를 물이나 기름에 넣었다가 빼서 급격하게 식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낚싯대를 물속에 던졌다가 빼는 행위도 담금질이라고 합니다. 담금질한 쇳덩어리 같은 사람, 이런 표현을 한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강해서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고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죠.

 

예문

 

* 강철은 담금질할수록 더 강해진다.

 

* 태릉 선수촌의 선수들은 담금질하듯 날마다 혹독한 훈련을 합니다.

 

* 그는 담금질한 쇠처럼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에요.

 

* 담금질하듯 정수리를 태우던 복더위는 갔고 매미 소리도 요즈막엔 뜸했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박경리, 토지>

 

* 대장장이는 쇠붙이를 뜨거운 숯불에 수십 번 담금질해 강력한 칼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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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근질 (명사)

 

불에 달군 쇠로 몸을 지지는 일. 낙형.

 

점심때 오븐을 열다가 뚜껑에 손가락을 데었습니다.

아주 살짝 뎄는데도 바로 물집이 생기더니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픕니다.

이런데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형벌이라니, 그 아픔은 정말 끔찍했을 것 같습니다.

 

단근질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낙형(烙刑)은 단근질 또는 포락형(炮烙刑)이라 불린다. 왕용쿠안(王永寬)의 『혹형, 피와 전율의 중국사』에 따르면, 중국 은나라 주왕이 총애하던 비(妃)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심하다 달아오른 구리 그릇에 기어오른 개미가 바동거리는 것을 보고 착안해 그곳에 개미 대신 사람을 올려 그녀의 웃음을 찾아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대 승려 해봉을 불에 달군 쇠막대로 발을 단근질한 김집을 오히려 처벌한 것으로 보아 비공식적이지만 낙형이 조선 초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까지 낙형은 상전이 자신의 노비를 사사로이 고문하는 방법으로 간간이 사용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부터 낙형은 역모자를 심문하는 고문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는데, 집권 초반에는 그도 낙형의 사용을 자제한 듯했지만, 점차 주된 고문 방식으로 일반화되었다.

낙형은 1733년(영조 9) 전격적으로 폐지되는데, 그 계기는 다음과 같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가 종기 치료를 위해 뜸 처방을 받은 후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뜸뜬 종기가 점차 견디기 어려움을 깨닫고, 이어 무신년 국문할 때의 죄수의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몰래 마음에 움직임이 일어난다. ”

『영조실록』 9년 8월 22일(庚午)

그가 직접 종기를 뜸 뜰 때 느껴본 뜨거움이 무척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결국 영조는 “법을 벗어나 통쾌한 승복을 받더라도 휼형(恤刑)에는 흠이 된다.”하며 낙형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낙형이 폐지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역옥에 대한 국청에서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낙형은 포도청이 도적을 다스릴 때나, 호세(豪勢)를 부리는 양반이 도망가거나 물건을 훔친 노비를 추심할 때 여전히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우리 역사넷 낙형에서

 

 

예문

 

* 그는 모진 단근질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동료의 이름을 불지 않았다.

 

* 덕령은 옥에 갇힌 지 이십 일 동안에 단근질로 고문을 당한 수효가 백 번이 넘었다. 출처: 박종화, 임진왜란

 

* 온몸이 단근질당한 것처럼 아팠다.

 

* 사육신은 단근질당하면서도 끝내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능지처참의 형을 받았다.

출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이제는 단근질과 담금질을 혼동해서 잘못 사용할 리는 없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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